1215 퇴직과 생각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한 달 17일 다녔다.
나는
끈기가 없나? 이정도는 참아야 하는 걸까? 정말 멍청한가?
이런 고민을 여러 번 하고 하고 계속했다.
사무실에서 겪은 여러가지 싫음을 여기저기에 말하므로써 스트레스를 풀려고도 해 봤지만
잘 안됐다.
스트레스가 풀렸는지 안풀렸는지 어찌 아는가?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반복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다로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
들어주는 사람은 각각 달라도 짜증나는 이야기기는 마찬가지인데
그걸 반복할 리가 없잖은가.
한달 보름을 이짓거리를 열렬하게(나 열받았소, 누구라도 내 얘기좀 들어줘!!) 하다가 그만두고
재취업을 노리는 와중에 다시 읽은
<일하는 사람을 위한 노트법>
흔히 사람들은 말 하면서 해결책을 찾는다고 한다.
말로 상황을 정리하고 반성하고 개선점을 찾고 그렇게 감정을 다듬는다.
들어주기는 그래서 힘들다.(들어주기를 잘 하는 남자라면 여자들에게 인기가 좋고 회사에서 잘 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나도 수다떨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권장도 하고 지인들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가 하는 불평불만 수다에 들어주던 이가 '또 시작이네' 하는 표정을 보여준 그 순간
'아 쪼다 되었네...' 자학을 하게 된 것이다.
나도 남의 쓰잘데 없는 이야기, 들어주고 싶지 않고 그러기도 싫고 솔직히 지겹다.
사랑하는 사람이든 친구든 자식이든 누구의 이야기를 아무때나, 다짜고짜 들어주고 싶지 않다.
나는 관심도 없는 터라 지루한데,(내 말을 더 하고 싶은데, 내 생각을 너에게 빨리 자랑하고 싶은데)
지가 잘못한 거면서 왜 남탓을 하냐고 핀잔받을 이야기에 "그 자식이 아주 나쁜 놈이네~" 편 들어주기도 지친다.
대화는 가치가 없어지고 결국에는 지겨움만 남기는 만남이 되는 그 따위 수다는 피곤하다.
그런 수다를 내가 하고 상대가 귀찮음을 보여주고 그래서 부끄러움을 느꼈던 것이다.
나는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웠고 읽기도 배웠는데 왜 미성년자처럼 종알종알 수다를 떨면서
생각을 정리하려는 걸까.
성인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어린아이들이나 중고생들이 하는 감정발산을 하다니!
말과 글은 같은 용도인데도 왜 글쓰기를 그리 안했을까.
글로 욕을 하고 화를 내고 그러다가 내 잘못을 뉘우치고 반성하고 그랬으면 수다로 인한 부끄러움은 없었을 텐데.
세련되고 성숙한 성인이 되고 싶었는데 그러기는 꽤 힘들다.
중년을 넘어선 지금도 행동제어를 못하고 쉽게 흥분하고 내 목소리 크기를 조절못하고(큰 목소리를 조절못하는게 부끄럽다)
언제 화를 내야 하나-고민하고, 순간 판단을 잘못하고.
히구치씨는 노트를 쓰면서 <인생의 심>을 만들라고 한다.
일과를 쓰고 일 처리 과정을 시간 흐름대로 덧붙이고 그에 따른 생각을 첨삭하다보면
내 생각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 수 있다.
관계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빨리 알 수 있다.
내 행동에 대한 규칙을 만들 수 있다.
즉흥적이지 않을 수 있다.
같은 실수가 또 없을 수 있다.
이것이 일기/메모/일지/기록의 힘이다.
성숙한 사람의 말은 가치가 있고 재치가 있고 재미있다.
그 사람의 행동은 신중하고 틀림없고 모나지 않는다.
성숙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글쓰기에 열중해야겠다.
그러다 보면 내 입보다 더 빠른 타자솜씨를 가지게 되겠지.
수다나 글쓰기 행위가 주는 긍정적인 결과는 모두 상대가 주는 거 아닌가.
혼자하는 수다는 이상하지만
혼자 글쓰기는 우아하다.
수다는 지금 나와 누군가가 연결되어 있어야 하지만
글쓰기는 시간과 공간적으로 자유다.
트윗이나 페북은 지금, 연결하고 연결되고 싶은 사람의 어린아이욕구를 건드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성숙해지는 것을 더 빠르게 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말의 힘은 글쓰기보다 하등한-
사색이라는 멋진 말을 쓸 수 있는 게 글쓰기 아닌가.
내 글쓰기는 유치하고 오락가락하는데다 자주 샛길로 빠지곤 해서 그것도 부끄럽다.
그래도 지금의 나보다는 내일의 내가 더 멋지지 않을까, 글쓰기로?
어제 오늘, 가족과 그만둔 회사의 험담을 하면서 왜 이런 좋지도 않은 이야기에 나는 열을 올리고
가족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걸까-생각하다가 깨달은 <글쓰기로 성숙해지기>
글쓰기로 얻어진 침묵이 나를 진짜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큰바위얼굴처럼 가만있어도 될 그런 사람이 되자.